아주 예전에 슬로우 쿠커에 꽂혀서 그 당시에 대중적이던 제품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크록팟이라고 외국에서 건너온 묵직하고 간단명료한 제품인데, 언제나 그랬듯이 슬로우쿠커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져 창고에 박혀있길 오래였다.
그러던 중 한 토마토 농장 견학을 다녀오게 되면서 각양 각색의 처치 곤란한 토마토가 잔뜩 생겼고, 잠들어 있던 슬로우쿠커를 활용한 한 레시피가 떠올랐다.

비프 부르기뇽.
간단히 말하자면 소 사태살과 토마토, 감자, 양파, 와인 등을 함께 넣어 오랫동안 푹 고아내는 음식으로, 슬로우쿠커를 처음 구입할 당시에 가끔 해먹던 음식이었다.
처치 곤란한 각종 토마토를 처리할 방도로 딱 적당하다 생각되어 다른 식재료들을 급히 공수해 왔다.

저렴한 척아이롤을 두께감 있는 녀석을 사와서 간단히 마이야르 반응만 올리고, 토마토와 당근을 포함한 각종 채소들을 한입 크기로 잘라주었다.
여기에 치킨스톡과 레드와인을 함께 섞어준 후 뚜껑 덮고, 잠들기 전 고온에서 10시간 가열을 눌러주는 것으로 레시피가 완료 되었다.

아침에 기상하여 확인해본 녀석의 비주얼은 상상 밖이었다.
수분감이 많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꾸덕함을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수분감이 많은 토마토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이나 물 조절 실패, 뚜껑을 완전히 닫아 놓았던 것 등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카레 정도의 질감은 되어야 먹을만 할텐데, 물이 너무 흥건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수준이다.
뚜껑 열고서 재가열을 하면 바로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허기진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먼저 맛을 봐보기로 한다.

으흠.
비프 부르기뇽을 목표로 만들었던 무언가를 밥과 함께 담아내자, 딱 개밥 비주얼이다.
맛은 그래도 들어갈 재료는 거의 다 넣어서 그런지 전과 비슷한 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릇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있는 저 채수들이 참... 덮밥 비슷한 느낌으로 먹고 싶은데, 건더기 많은 국밥 같은 비율이 되고 말았다.
와이프는 아마 손도 대지 않을듯하고, 아들 녀석도 한입도 먹지 않을터이다.
결국 한솥 가득 만든 비프 부르기뇽 실패작을 혼자 다 먹어서 정리해야겠다.
다음에는 꾸덕하고 진하게 잘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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